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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 빚 상속을 포기하면 끝날 것 같지만, 빚은 다음 순위 가족에게 넘어가고 기한은 3개월입니다.

장례를 치르고 나면 남은 가족에게 가장 낯선 숫자가 하나 날아든다. 고인이 남긴 빚이다. 재산보다 빚이 많다는 걸 알게 되면 대부분 “상속을 포기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포기는 내 몫을 없애는 일이지 빚을 없애는 일이 아니다.

서류봉투, 제도, 관공서

선택지는 셋, 기한은 3개월

민법 제1019조 제1항은 상속인이 상속 개시가 있음을 안 날부터 3개월 안에 단순승인, 한정승인, 포기 중 하나를 할 수 있다고 정했다. 그 안에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제1026조 제2호에 따라 단순승인한 것으로 본다. 재산과 빚을 모두 물려받는다는 뜻이다.

선택 결과 조문
단순승인 재산과 빚을 모두 받음 (가만히 있어도 이렇게 됨) 제1026조
한정승인 받은 재산 한도 안에서만 빚을 갚음 제1028조
포기 처음부터 상속인이 아니었던 것으로 봄 제1041조·제1042조

3개월은 사망한 날이 아니라 사망을 “안 날”부터다. 그리고 가만히 있는 것도 선택으로 친다는 점이 가장 무섭다.

숫자로 보면

가령 아버지가 재산 1억원, 빚 3억원을 남겼다고 해 보자. 빚이 재산의 3배다.

  • 단순승인: 1억원을 받고 3억원을 갚아야 한다. 내 돈 2억원이 더 들어간다.
  • 한정승인: 받은 1억원 한도에서만 갚는다. 채권자들은 빚의 3분의 1, 즉 약 33%를 비율대로 나눠 받고(제1034조) 나머지 2억원은 상속인이 책임지지 않는다.
  • 포기: 1억원도 받지 않고 3억원도 갚지 않는다.
재산 1억, 빚 3억을 남겼다면

내 지갑만 보면 한정승인과 포기의 결과는 비슷하다. 차이는 가족 쪽에서 생긴다.

포기한 몫은 사라지지 않는다

민법 제1000조는 상속 순위를 ①직계비속 ②직계존속 ③형제자매 ④4촌 이내 방계혈족으로 정했다. 그리고 제1043조는 상속인 중 한 명이 포기하면 그 몫이 다른 상속인에게 간다고 했다.

자녀가 모두 포기하면 상속인 자리는 다음 사람에게 넘어간다.

같은 순위 안에서 가까운 사람이 먼저이니(제1000조 제2항), 자녀가 모두 포기하면 손자녀나 고인의 부모, 형제자매처럼 생각지 못한 가족이 빚의 상속인이 될 수 있다. 그 사람들도 각자 3개월 안에 다시 포기해야 한다. 가족 여러 명이 연쇄적으로 법원에 신고하는 일이 생기는 이유다.

반대로 1순위 상속인 중 한 명이 한정승인을 하면 상속인 자리가 그 사람에게 남아 있어 다음 순위로 넘어가지 않는다. 내 몫을 정리하면서 가족에게 빚이 번지는 것을 막는 방법이라고 본다.

한정승인이 늘 정답은 아니다

한정승인은 손이 많이 간다. 제1030조는 기한 안에 상속재산 목록을 붙여 법원에 신고하라고 했고, 그 뒤에는 채권자에게 알리고 비율대로 나눠 갚는 절차가 이어진다. 재산이 거의 없고 빚만 있는 경우라면 가족 모두가 포기하는 편이 단순할 수 있다. 반대로 재산과 빚이 비슷해 남는 게 있을지 모르는 경우, 또는 다음 순위 가족에게 부담을 넘기고 싶지 않은 경우라면 한정승인 쪽이 낫다.

가만히 있으면 단순승인으로 본다는 제1026조 제2호에는 사연이 있다. 대괄호 주석에 따르면 1998년 헌법재판소가 이 조항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했고, 2002년 1월 14일 개정 때 다시 들어왔다. 그래서 지금 법은 3개월이라는 짧은 기한을 두면서도, 빚을 늦게 안 사람을 위한 출구를 따로 열어 두고 있다.

늦게 알았다면

빚이 재산보다 많다는 걸 3개월 안에 몰랐다면 길이 하나 더 있다. 제1019조 제3항은 중대한 과실 없이 몰랐다면 그 사실을 안 날부터 3개월 안에 한정승인을 할 수 있다고 했다. 미성년 상속인은 성년이 된 뒤 안 날부터 3개월 안에 할 수 있다(제4항, 2022. 12. 13. 신설).

다만 그전에 상속 재산을 처분했다면 단순승인으로 볼 수 있다(제1026조 제1호). 고인의 예금을 꺼내 쓰거나 차를 파는 일이 그렇다.

이 숫자가 말해 주지 않는 것

장례비나 고인의 휴대폰 해지 같은 행위가 “처분”에 해당하는지는 상황마다 판단이 다르다. 보험금처럼 상속재산이 아닌 돈도 있어 실제 계산은 달라진다. 한정승인 뒤의 공고와 배당 절차(제1032조~제1034조)는 간단하지 않아 이 글에서 자세히 다루지 않았다.

정리하면 기준은 두 가지다. 상속이 시작되면 3개월을 먼저 센다. 빚이 많다면 “나만 포기”가 아니라 “빚이 다음에 누구에게 가는지”까지 보고 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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